퇴사 후 우울증이 깊어졌을 때 저를 가장 괴롭혔던 건 다름 아닌 '무기력함'이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도 몸이 침대 밑으로 꺼져 들어가는 것 같았고,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커다란 상처나 슬픈 일이 터져서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내 안의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되어 세상과의 연결 고리가 전부 끊어진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 '성격이 문제인 걸까, 아니면 의지가 부족한 걸까'라며 끊임없이 제 탓만 했습니다. 사람들을 마주치는 것도 점점 부담스러워지면서 대인기피 증상까지 찾아왔고, 집 밖으로 나가는 일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숙제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혼자만의 방 안에 갇혀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 이대로 고립되어 모두가 나를 완전히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두려움이 들었습니다. 살아내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이 고리를 끊어내야만 했습니다.

늘 생각만 했던 수영, 마침내 끌어낸 용기
스스로를 돕기 위해 내린 결정은 아주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밖으로 나가서 햇빛을 쐬고, 밤에 잠을 잘 자고, 밥을 챙겨 먹는 일상의 아주 기본을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몸을 움직일 수단으로 수영을 떠올렸습니다. 수영은 어릴 때부터 막연히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만 했을 뿐, 한 번도 제대로 접해보지 못한 운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수영을 시작하고자 하는 발걸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는 체력도 바닥이었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조차 버거운 상태였기 때문에, '등록해 봤자 며칠 못 가고 그만두겠지'라는 의구심이 먼저 들었습니다. 끝까지 해낼 자신감이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솔직히 아는 사람을 만날까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집 근처 수영장은 차마 가지 못하고 차를 타고 가야 하는 거리의 수영장으로 등록을 했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운동'이라는 한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기운 운(運)'에 '움직일 동(動)'을 씁니다. 말 그대로 멈추어있던 내 몸속의 기운이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과연 내 안의 기운도 다시 움직일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며 첫 수업에 들어갔습니다.
첫날은 제대로 된 수영 형태도 갖추지 못한 채 그저 물속에서 발차기만 몇 번 차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온몸의 진이 다 빠져나간 듯 피곤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밤, 정말 오래간만에 중간에 깨지 않고 깊은 숙면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잠을 제대로 자고 나니 다음 날 머리의 무거움이 한결 줄어들었고, 자연스럽게 식욕이 돌아와 밥을 챙겨 먹게 되었습니다.
잘 먹고, 잘 자고, 정해진 시간에 수영장에 가서 몸을 움직이는 이 세 가지가 반복되자 제 삶에 긍정적인 '선순환 회로'가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하루하루 몸이 개운해지면서 우울증이라는 깊은 수렁에서 조금씩 빠져나오고 있음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속에서의 집중, 그리고 개운함
수영이라는 운동에는 또 하나의 명확한 장점이 있었습니다. 땀과 열기를 쏟아낸 뒤 운동 전후로 깨끗하게 씻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수영을 마치고 샤워를 한 뒤 밖으로 나올 때 느끼는 그 특유의 상쾌함과 뿌듯함은, 무기력에 짓눌려 있던 저에게 매일 작은 성공 경험과 확실한 포상이 되어 주었습니다.
수영장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도 대인기피증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과 한 공간에 있는 것조차 어색했고, 타인의 시선이 느껴질 때면 갑자기 숨이 막히거나 머리가 어지러운 듯한 불안 증상이 올라와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사람들과 소소하게 대화를 나누고 그날의 수영 동작과 호흡에 온전히 집중하려 애썼습니다. "오늘 배운 동작이 어렵네요", "발차기는 이렇게 하니까 편하더라고요" 같은 짧은 소통을 이어가다 보니 어느새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도, 갑작스럽게 찾아오던 불안한 순간들도 자연스럽게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무기력하게 누워있기만 하던 예전의 모습은 어느새 사라져 가고 있었습니다.
나를 꺼내준 마중물, 정신과 약물 치료
사실 제가 수영을 시작하고 이 일상들을 만들어갈 수 있었던 바탕에는 '정신과 약물 치료'라는 중요한 마중물이 있었습니다. 지독한 우울증과 무기력에 빠지면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행동을 시작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뇌 속의 신경전달물질이 불균형해진 상태에서는 아무리 마음을 고쳐먹으려 해도 몸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정신과 약은 그 단단하게 닫혀있던 무기력의 껍질을 깨고 나올 수 있게 도와준 최소한의 동력이었습니다. 약의 도움을 받아 아주 작은 힘을 얻었기에 수영장 등록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결심할 수 있었고, 일단 밖으로 나와 움직이기 시작하자 운동이 주는 회복 효과가 크게 더해진 것입니다.
처음부터 약 하나에만 의존하려 하지 않았고, 반대로 의지만으로 해결하겠다고 고집을 부리지도 않았습니다. 의사 선생님과 차분히 상담하며 나에게 맞는 약을 찾고, 그 약이 주는 최소한의 에너지로 몸을 움직인 것이 가장 좋은 시너지를 만들어냈습니다. 이후 몸과 마음의 리듬이 완전히 회복되면서 선생님과 상의하여 약의 용량을 차근차근 줄여나갔고, 결국 약을 완전히 끊고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지금 우울함과 극심한 무기력에 갇혀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면, 절대로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내 마음과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상태일 뿐입니다. 혼자 애쓰기보다 전문 의사 선생님을 찾아가 도움을 받고 약의 마중물을 이용해 보세요. 그리고 작게라도 움직이고, 햇빛을 쐬고, 푹 자고, 잘 챙겨 먹는 일상을 만들어간다면 길었던 어둠은 반드시 지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